회의 시작 5분 만에 내 이름이 나왔다. 지난주에 보낸 제안서에서 중요한 항목이 빠졌다는 거였음. 거래처에서는 이미 수정 요청이 온 상태였다.
근데 그 항목, 처음부터 없던 게 아니었다. 내가 넣었던 걸 팀장이 빼라고 해서 뺀 거였다. 지난 회의에서 분량이 너무 길다고, 이건 굳이 없어도 된다고 했거든.
내가 조심스럽게 ‘지난번에 말씀하셔서 삭제한 부분입니다’라고 하니까 팀장이 말을 끊었다. “내가 언제 빼라고 했어. 줄이라고 했지.”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다들 노트북만 보고 있었음. 나도 기억이 확실했는데, 막상 그렇게 딱 잘라 말하니까 내가 잘못 들었나 싶더라.
“제가 기억하기로는…” 하고 다시 입을 여는데, 팀장이 이번에는 거래처 담당자 쪽을 보면서 말했다. “제가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담당자가 좀 헷갈린 것 같네요.”
진짜 얼굴이 뜨거워졌다. 반박하면 회의 분위기 망치는 사람 되고, 가만히 있으면 내 실수로 확정되는 그 기분 있잖아.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신입이 손을 들었다. 입사한 지 한 달 된 사람이었는데. “잠시만요. 제가 잘못 적었는지 확인해도 될까요?”
신입이 화면을 돌린 이유.
현재는 광고 없이 이어 읽을 수 있어요.신입은 말을 마치고 노트북을 천천히 돌렸다. 팀장은 화면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회의록에는 날짜, 참석자, 삭제할 항목 세 개가 적혀 있었다. 문제의 항목도 그 안에 있었고, 바로 아래에는 팀장이 남긴 ‘확인했습니다. 이대로 진행하세요’라는 댓글이 붙어 있었다.
신입이 정말 몰라서 묻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후에 바뀐 내용이 있으면 제가 기록을 놓친 것 같아서요.”
그 문장이 묘했다. 누구를 몰아붙이지도 않았고, 거짓말한다고 하지도 않았음. 그냥 기록을 확인한 건데, 회의실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팀장은 ‘그때랑 지금 상황이 다르니까’라고 했다. 거래처 담당자가 끼어들었다. “그럼 수정 방향부터 정하죠. 담당자 실수로 전달받았는데, 그건 아닌 걸로 알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신입에게 커피를 사주겠다고 했다. 걔는 자기가 괜히 나선 거 아니냐며 걱정하더라.
내가 무슨 소리냐고 하니까, 신입이 입사 첫 주에 내가 해준 말을 꺼냈다. ‘업무 배우다가 이상하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물어봐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선배님 표정이 너무 이상해서.”
그날 커피 두 잔을 들고 돌아오는데 메신저 알림이 왔다. 팀장이었다. ‘아까는 내가 착각했네.’ 나는 답장하기 전에 그 메시지를 업무 폴더에 남겨뒀다. 이제 나도 신입한테 배워야겠더라고.
회의록을 꼼꼼히 쓰는 이유를, 나는 그날 배웠다.
